한국일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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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거지 ××야!! 앵벌이도 껌 정도는 내밀면서 도와달라고 한다. 자립의 의지가 없어 ××놈이...”

지방선거가 코앞이었던 6월 초. 새누리당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총괄 선대위원장을 맡아, 세월호 참사 책임을 뒤집어쓰게 생긴 박근혜 대통령을 살려달라고 외치며 지지층 단속하느라 염치마저 내려놨던 여당 중진 의원한테 이렇게 적나라한 욕설이 날아들었다. 의외로 용감한 이는 좌파 진영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 몸 담은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알 만한 영화들에서 비중은 크지 않지만 인상 깊은 배역들을 연기했던 배우 김의성(49)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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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관상’에서, 줄곧 가면 쓰고 목을 삐딱하게 기울인 채 등장하는 수양대군(훗날 세조)의 책사 ‘한명회’로 분장했던 배우가 그다. 그의 배우 인생은 평탄치 않았다. 거장 홍상수 감독의 연출 데뷔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의 주연을 맡을 정도로 한때 잘나갔지만, 2000년대 초 돌연 연기를 그만두고 베트남으로 날아가 프로그램 제작사업을 벌이다 2년 전 영화계에 다시 배우로 전격 복귀했다.

유력 정치인을 향한 ‘욕팔매’는 그의 놀이터인 트위터에서 이뤄졌다. 2년쯤 전 스마트폰을 사면서 그는 이 “달콤하고 재미있는 인스턴트 세계”에 빠져 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중독된 상태다. 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 군부 독재 시절 연극판에 뛰어 들었고 그땐 연기가 정의 구현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선 거대하고 불의한 시류에 끝까지 맞서길 포기한 80년대 운동권 대학생의 무기력 같은 게 보인다. 그는 짐짓 밥벌이에만 바쁘고 사회 문제엔 별 관심 없는 척 연기했지만, 인터뷰 말미에 양심적 지식인으로서의 민낯을 드러냈다. 한명회가 영화 절정부에 이르러서야 가면을 벗듯. 장난감인 트위터는 그에게 무기도 될 터.

인터뷰와 출연 영화 장면 재연은 26일 그가 사는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주변에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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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개봉한 출연작 ‘자유의 언덕’은 순항 중인 듯하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있었나. A "‘자유의 언덕’ 관객 수가 3만명을 넘었는데, 홍상수 감독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스코어 정도는 되면 좋겠다. 영화 찍고(김의성은 얼마 전 촬영이 시작된 부산 배경의 스릴러물 ‘오피스’에 조연으로 출연한다)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멍때리고’(멍하게) 있다."

Q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인근에 산다고 들었다. 극중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카세 료)과 함께 언덕을 오르면서 경리단길을 소개하는 장면도 ‘자유의 언덕’에 나오던데. 살아보니 어떤 곳인가. A "3년쯤 전 이사 왔다. 산이 가까이 있고 동네가 잘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어르신부터 젊은이에 외국인까지 섞여선지 여러 색깔이 보였다. 영화 제목처럼 자유의 언덕 같은 분위기였다가 요즘 ‘관광의 언덕’으로 변했다. 유명세다. 그래서 항상 말한다. 오지 마.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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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6ㆍ4 지방선거 직전 트위터 글을 통해 현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을 거지에 빗대면서 거칠게 비난한 적이 있다. 왜 그랬나. 파장이 상당했는데, 예상했었나. 의도한 거였나. A "반대다. 남들이 못 볼 거라 생각했다. 프로텍트(비공개 설정) 계정이어서 리트윗(재전송)이 안 되는데 누가 사진을 찍어 글을 알렸다. 정말 화가 많이 나 그랬다. 가장 힘 센 양반이 가장 약한 사람처럼 구니까. 혼자 숨어 욕하곤 했는데 온라인 독립운동가처럼 비춰졌다."

Q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셈이다. 자유에 따른 책임 같은 것도 생겼고. A "내게 트위터는 배설하고 노는 공간이었다. 생각을 전파하는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 친한 사람도 ‘트잉여’(트위터 잉여ㆍ일종의 중독자)들이 많다. 영향력엔 관심 없었다. 억울했던 이유다. 그러나 사건 이후 고민 중이다. 즐기면서 주어진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할 건지."

Q 단역 배우 정대용 아나. 세월호 유족 비난 글에 동조하는 댓글을 남겼다 저주와 출연 영화 보이콧 위협 등에 결국 배우 인생을 접었다고 한다. 말 한 번 잘못하면 모든 걸 잃는다. A "모든 발언은 보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외라면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다. 인간의 존엄을 해치기 때문이다. 정씨의 ‘황제 단식’ 발언은 이에 가깝다. 하지만 밥줄 끊겠단 반작용도 혐오스럽긴 마찬가지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게 좌우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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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80년대 말부터 20편 넘는 극에서 다양한 역을 소화했다. 실제 김의성은 어떤 사람인가. A "고종석 선생(소설가 겸 에세이스트)을 추종하는 자유주의자다. 함께 있으면 유쾌한 사람, 나이에 비해 덜 꼰대(늙은이의 은어) 같은 사람, 따뜻함과 차가움이 조화된 사람이란 평가를 듣고 싶다. 집에 있을 땐 고양이와 놀고 책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꼼꼼히 읽는다."

Q SNS를 통해 거침없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유명인사 가운데 유아인처럼 젊은 배우도 있다. A "유아인이 팔로(구독)하는 (트위터리안) 100여명 안에 나도 포함된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똑똑하고 날이 서있는 게 좋다. 날 서면 쳐내고 깎아내는 게 요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다. 남 비판보다 자기 콘텐츠 생산에 집중하는 점도 좋다. 사람을 홀리는 매력적인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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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트위터 시작 계기가 뭔가. 현재는 자칭 중독자인데 주로 어떤 식으로 트위터를 활용하나. A "동기는 기억 안 난다. (김무성 비난 발언 파동 뒤) 정리가 덜 됐지만 어쨌든 얼터너티브(대안적) 미디어로 활용할 거다. 매일 ‘오늘 하루는 이랬다’ 기록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대신 먹어주는 ‘셀카’ 포맷을 연습 중이다. 식후 담배를 피우면서 오늘의 한마디를 한다."
☞ 김의성 트위터 살펴보기


Q 폐쇄적인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 걸 보면 글에 대한 대중 반응엔 별 관심 없는 것 같다. A "막 떠오른 생각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단 게 트위터의 재미다. 하지만 반응에 너무 신경 쓰지 않도록 경계한다. 남들이 공감하는 얘기를 대신 해주는 건 새로운 걸 쓰는 것보다 덜 재미있는 일이다. 독창성이 없으면 정치적이지도 않다. 가장 예술적인 게 가장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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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홍상수 감독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주연을 맡았다. 12년 간 공백기를 끝낸 재기작도 홍 감독 작품이다. 홍 감독 페르소나란 평가까지 있다. 인연이 깊은 듯하다. A "일방적인 관계다. 워낙 내가 존경하고 객관적으로도 큰 예술가다. 동시대에 살아서 영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작품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한때 연기를 그만뒀던 데에도 홍 감독 영향이 없잖다. ‘돼지가…’에 출연한 뒤 다른 작품이 시시해졌다."

Q 홍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지식인은 비겁한 위선자이거나 허영덩어리, 도덕적 허무주의자이기 일쑤다. 하지만 지식인이 다 그런 건 아니다. 김의성만 해도 실천하는 지식인 아닌가. A "실천하는 지식인상은 나와 거리가 멀다. (세월호 유족) 김영오씨가 단식할 때도 동조 단식 권유를 받았지만, 거기(광화문광장) 가 앉아있는 게 내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집에서 하루 단식하는 선에서 스타일과 타협했다. 비장하고 심각한 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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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관객은 영화 ‘관상’ 한명회 등 극중 인물로 배우를 기억한다. 김의성의 연기관은 뭔가. A "연기는 미친 짓이다. 가령 악덕 부장 연기를 할 경우 어떻게든 그 인물이 되려 애쓰지만 완전히 그 인물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자기 분열적일 수밖에. 가상 인물을 만들어내기보다 내 안의 다양한 본성 중 특정 측면을 극대화해 재구성하는 식으로 답을 찾는다."

Q 연기자 김의성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A "전엔 연기를 못해 남한테 폐를 끼치고 있단 생각에 부담이 컸다. 지금도 평가는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필요하니 쓰겠지 하는 여유가 생겼다. 굉장히 잘하진 않아도 쉽게 대체자를 찾긴 어려운 배우일 거다. 40~50대 중반 배우 중 나처럼 얘기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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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군부독재 시절인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생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고 김근태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했던 해다. 그 해 김의성은 연극반 활동을 시작한다. A "그땐 세상이 명쾌해 외려 지금보다 좋았던 것 같다. 흑과 백이 전두환 정권과 민주화 운동 진영으로 선명하게 나뉘었다. 양쪽 모두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지만(웃음) 악의 축이 명백하지 않았나. 당시 한국 경제는 풍요로웠다. 어떻게든 졸업만 하면 삼성 같은 대기업 취직이 보장되던 때다. 하지만 정의의 편에 서서 사회에 발언하고 세상도 바꾸고 싶었다. 연극의 힘을 느끼고 믿었다. 87년 졸업도 하기 전 극단 ‘천지연’에 들어가 배우 생활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를 재개, 열심히 밥벌이 하는 직업 배우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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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복귀 뒤 사회성 짙은 영화에 주로 출연하고 있는 게 극과 연기의 힘을 믿기 때문 아닌가. A "나한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선택 당하는 입장이다. 어릴 땐 연기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라 여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연극이나 내 행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회의를 품은 지는 오래됐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다. 사회적 발언을 하려 하기보다 그냥 배우로 살자고 마음먹었다. 그저 연기가 좋아 배우 일을 다시 하게 됐으니 한때 도구였던 연기가 이제 목적으로 바뀐 셈이다. 물론 아무리 직업 배우여도 너무 끔찍한 작품은 못 한다. 가령 이승만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연대기극에 출연할 수야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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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리기사 폭행을 빌미로 세월호 유족을 매도하는 우파에 거꾸로 비판을 가하는 게시물을 최근 트위터에 올렸다. 정의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앞선 주장과 안 맞는 것 아닌가. A "아직 사실관계가 분명친 않지만 대리기사를 불러다 한참 기다리게 하고 폭행까지 했다면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건 장삼이사들이 행하는 수많은 사적 실수 중 하나다. 그런데도 신문 1면을 장식했으니 숨은 의도가 뻔하잖나. 행위보다 이를 다루는 언론이 더 문제라 봤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들의 액션과 리액션을 보면 대한민국 역사 기록 이래 이렇게 슬픔과 분노를 참을성 있게 견딘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 전 국회의장이 힘없는 여자 가슴 찌르고 검사가 길에서 바지 까고 있는데 유족을 도덕적 해이 집단으로 몰아가는 언론에 화가 난다."

Q 지금 우리 사회가 나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어떻게 보나. A "대단히 비관적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뒤로 간다기보다 나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헌법적 가치가 뻔뻔하게 무시되고 민주주의 원칙은 무너지고 언론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돈에 의한 지배가 강화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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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바로잡을 방법은 없나. 김의성한테선 맞서다 포기한 자의 좌절이 보인다. 순응할 셈인가. A "마땅한 저항 수단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돈의 힘이 너무 압도적이다. 싸우다간 장렬히 스러질 게 뻔하다. 비극의 기록을 남기거나 하는 소극적 저항이 고작이다. 그래도 민주적 소양을 갖춘 시민ㆍ지식인이란 틀에 언행을 맞추며 살려 한다. 지난 대선이 끝난 뒤 든 생각이, 우리가 5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즐기듯 관객 입장에서 정치 게임을 즐겨온 것 아닌가 하는 거다. 중요한 건 누가 권력을 잡든 흔들리지 않는 시민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당파적 사안보다 자유나 인권 등 헌법 가치 옹호를 위해 ‘찍’ 소리라도 내려 한다. 트위터 발언으로 논쟁을 끌어내고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키는 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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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기획ㆍ글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사진 김주영기자 will@hk.co.kr
보조출연 및 속기

강병조 인턴기자
(한성대 영문학과 4)

이영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법학과 4)

디자인 한규민 szeehgm@hk.co.kr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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