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니까 청춘이다
신데렐라 일낼라
(10) 싱어송라이터 장재인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소통의 큰 축이 된 지 오래죠. 남다른 안목과 친근한 매력으로 온라인 세상을 주름잡고 있는 ‘소셜 스타’를 한국일보닷컴에서 만나 보세요. 정보와 삶이 녹아 있는 디지털스토리텔링 기획 인터뷰 ‘눈(SNS)사람’입니다. 연재물은 한국일보닷컴(interview.hankookilbo.com)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 편집자주 –
2014년 청춘은 고달프다. 꿈을 좇으라는 말은 흘러간 유행가다. 청춘은 한탄한다.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일자리가 정말 없단다. 청춘은 또 실망한다. 남부럽게 일자리를 찾아도 그저 '미생'일 뿐이란다. 그렇게 청춘은 긴 슬럼프에 놓여있다.
가수 장재인(24)도 청춘이다. ‘나만의 노래’를 즐기던 소녀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신데렐라' 공연 영상보기) 세상에 도전을 던졌다. 출발은 나름 화려했다. 단지 허락 받은 시간이 짧았을 뿐. 음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소속사를 여러 번 옮겨야만 했다. 스트레스로 근긴장이상증을 앓기도 했다. 도전의 대가였던가. 길지 않은 시간 제법 굴곡이 많았다.
그래도 청춘은 청춘이다. 열병쯤은 훌훌 털어버린다. 장재인 역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프로듀서 윤종신을 만나 새 앨범을 준비 중이다. 근긴장이상증 후유증으로 좋아하던 기타는 아직 들지 못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더니, 그녀의 고행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눈빛엔 제법 여유가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연습실에서 만난 장재인은 에너지가 넘쳤다. "저는 이제 시작이에요. 내년이 너무 기대돼요" 목소리엔 새 출발에 대한 설렘과 자신감이 살짝 얹어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희망차게 만들었을까. 강추위가 시작되던 12월 어느 날, 그녀를 만나 '꽃피는 봄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1. crescendo (크레센도)
활발해진 그녀, 장재인
Q 오랜 만에 팬들 앞에 섰다. 그런데 신곡이 아닌 방송 활동으로 팬들을 찾았다.
A 아직은 컴백할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 활동은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KBS 2TV '불후의 명곡'을 통해 무대에서 노래했다. 오랜만이라 좀 긴장되더라. 어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몰아치듯 준비했는데, 끝나고 나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Q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 패션도 날이 갈수록 세련미가 더해지는 등 점점 여자가 돼간다.
A 5살 때 어머니 몰래 화장하고 귀걸이를 해보고는 했다. 데뷔하고 나서는 잡지 촬영이나 패션행사를 많이 하면서 감각이 좋아진 것 같다. 누구의 영향을 받거나 하는 건 아니다. 손가락 타투도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여성미에 대한 부분을 말하자면, 예전에는 내 여성스러운 면을 거부하고 애써 털털하게 행동했다. 그때 사람들이 '재인아, 네가 여자라는 걸 알아야 돼'라고 조언했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24살이 돼서야 알겠더라. 내 성격에 맞는 애티튜드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 a tempo (아템포):
원래의 속도로 돌아오는 시간
Q SNS를 보니 만년필, 노트 등 클래식한 아이템 사진이 많더라. 원래 남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것에 호기심이 있나.
A 클래식한 아이템을 좋아하긴 한다. 그 만년필은 최근 아는 언니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뭔가 한 가지에 호기심이 생기면 그거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변하기도 빨리 변해 다른 것에 금방 관심을 옮기기도 한다.
Q SNS에 자신이 평소 읽고 있는 책 사진도 자주 올리던데, 요즘 보기 힘든 다독가 아닌가.
A 생각보다 책을 많이 안 읽어서 뜨끔하다. 다른 다독가에 비하면 나는 많이 부족하다. 어머니가 굉장한 다독가이신데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최근에는 만년필을 선물한 언니가 준 책 '설국'을 읽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다워서 추천하고 싶다.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책의 표지나 문구를 찍은 사진을 자주 SNS에 올린다.
3. Cantabile(칸타빌레):
노래하듯 써 내려가는 시
Q 요즘 소길댁(이효리) 외에 블로그 하는 연예인이 드문데, 장재인은 블로그 활동도 활발하다. 시나 일기 형식의 글이 많다. 내용을 보면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는 느낌이 든다.
A 블로그는 2010년부터 운영했다. Mnet '슈퍼스타K2'(이하 ‘슈스케2’)에 출연하기 전부터다. 블로그는 내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2살 때부터였다. 갑자기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찢어진 노트에 쭉쭉 글을 써내려 갔다. 지금 읽어보면 웃긴 내용이 많다. 그 나이 때만 그릴 수 있는 생각들이다.
Q 지금의 주옥같은 가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의 내공이 다져져 온 결과 아닌가.
A 물론 연습이 됐다. 사실 글을 쓰게 된 진짜 계기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책들이 많다. 어느 날 책장을 뒤지는데 낡은 노트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20살 시절 일기들이었다. 그 일기를 몰래 훔쳐보면서 어머니도 여자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어머니를 발견한 느낌이었고, 그 주옥같은 글귀들에 감동받았다. 며칠을 그 일기에 빠져 지냈다. 그러고 나니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Q 그런데 블로그의 '댓글쓰기'를 막아놓은 것은 의외였다. 통상적으로 SNS는 소통이 목적인데, 그걸 막아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나는 정보의 공유가 아니라 감정의 공유를 원한다. 독자가 댓글을 달면 내 감정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가 있더라. 다른 네티즌이 댓글을 읽는 순간 내 글을 왜곡해 해석할 요지가 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이입되는 것이다. 그래서 댓글을 막았다. 대신 '안부 글'이라는 방명록을 열어 그 곳에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4. mezzo piano (메조 피아노):
투병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
Q 투병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근긴장이상증으로 1년8개월을 쉬었는데, 지금은 완쾌된 건가.
A 결국 모든 병은 스트레스에서 온다. 몸에 마비가 왔고 쉬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고 일도 하지 못하니 내 안으로만 자꾸 파고들었다. 내 감정을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현재 치료는 끝났지만 근긴장이상증은 완쾌라는 것이 없다. 종종 마비 증세가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달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꾸준히 관리를 하면서 기력을 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타 연주도 쉬고 있다. 기타는 내 마음이 동하고 몸이 따라준다면 다시 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무리해서 칠 생각이 없다.
Q 휴식기 후 음악관이나 가치관에 변화가 있다면?
A 전에는 항상 끝이 흐지부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든 적극적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잘해내고 싶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책임감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톱스타인가 아닌가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그런 구분보다는 인정할만한 커리어와 실력이 쌓였는지가 중요하다. 커리어라는 것이 명성에 관련된 것은 아니고, 내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이뤘는가가 포인트다. 더 농익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말하기에는 나도 뮤지션인지라 살짝 자존심이 상한다.(웃음) 요즘에는 창법을 바꾸고 있다. 처음 아이디어는 윤종신 선생님이 준 것이다. 윤종신 선생님은 종종 권유하는 형식으로 조언을 던지고는 하는데, 뮤지션 자존심이 강했을 때는 이를 곱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선생님의 의도를 깨닫게 됐다. 내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것이다. 지금은 감정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최적화된 목소리를 찾았다. 이를 발전시키고 안정화하는 것은 내 몫이다.
5.Da Capo (다카포):
‘처음’을 떠올려보기
Q 데뷔 후 발표한 앨범들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불안감은 없었나.
A 인생 통틀어서 가장 부정적이었던 시기가 작년과 올해였다. 몸이 아프니까 마음이 약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원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다. 실적 부진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음악 계속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일관했다.
Q 그래도 음악인에게 흥행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 아닌가.
A 물론 이제 반드시 신경 써야 한다. 음악계의 현실과 생리를 비로소 알게 됐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도 명확히 알고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항상 그랬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열여덟 살에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졌다. 그래서 '슈스케2'에 출연했고 통기타 붐이 일었을 때 꿈이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내 자신이 더 똑똑해진 것 같다.
Q 장재인은 통기타, 인디음악을 회귀시킨 주역으로 꼽히고 있다. 이후 인디음악계에서 여러 스타들이 탄생했다. 최근에는 '슈스케6' 우승자 곽진언이 부상했다. 장재인과 곽진언의 음악이 비슷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A 곽진언과 내가 비슷하다는 얘기는 장르보다는 성향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진중하고 감정에 빠질 줄 아는, 그런 성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곽진언이 대단하다고 느낀 게, 그 사람은 여백을 안다. 91년생이지 않나. 나와 같은 나이지만, 그 나이에 여백을 알고 곡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것 같다.
6. piano forte (피아노 포르테):
사람은 변해야죠, 끊임없이
Q 아이돌 음악에 대한 욕심은 없나. 음악 색채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A 전부 뒤집을 것이고 내년에는 더욱 나다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 것이다. 모든 면에서 유연해져야 한다. 음악 장르에 대해서도 열려있다. 윤종신 선생님이 나에게 최적화된 장르를 알려줄 것이다. 선생님과 나의 의견 사이에서 가장 좋은 합을 찾아야 한다. 비트 있는 음악에도 호기심이 많다. 어렸을 때 클래식 다음으로 빨리 접한 게 팝이었다. 다만 내가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음악은 다른 장르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해온 것이다.
Q '보헤미안 장재인'과 '톱스타 장재인'이 있다. 본인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
A 누군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치자. 일을 할 때 아르바이트생은 미소를 띠며 손님을 대접한다. 하지만 퇴근 후에는 다시 학생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런 것 같다. 사람에게는 항상 양면이 공존한다. 이제야 얘기하지만, 사실 나는 생각보다 보헤미안 성향이 짙은 아이는 아니다. 편리함도 많이 추구한다.(웃음)
Q 20대 초반, 아직 이룰 것이 많다. 향후 계획은.
A 우선 몸이 더 건강해져야 한다. 투병 이후 많이 떨어져 있는 기력을 회복하고 싶다. 앨범은 내년 하반기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규가 될지 싱글이 될지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개인적으로 내년이 너무 기대된다. 아플 때, 한창 일에 치일 때는 음악하는 즐거움을 잃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연구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 창법 변화도 그 일환이다. 내년에는 반드시 모든 게 더 좋아질 것이다.
Q 인생의 과도기를 걷고 있는 또 다른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
A 열여덟 살, 처음 상경해서 연습실에 틀어박혀있을 때만 해도 나는 굉장히 폐쇄적이었다. 그때는 검정고시 준비도 해야 했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과 나를 단절시켰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법을 터득했다. 나는 원래 사교적인 성격이다. 지금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일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좋다. 사람은 계속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변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평생에 걸쳐서 익혀야 할 것이다.
* 질문 내용에 감동했다며 성실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장재인씨,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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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글 | 이소라 기자 wtnsora21@hk.co.kr |
사진 | 김주영기자 will@hk.co.kr |
속기 및 보조 | 강병조 인턴기자 (한성대 영문학과 4) 현민지 인턴기자 (숙명여대 미디어학부3) |
디자인 | 백종호 jongho@h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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